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녹산의 난 (문단 편집) ==== 안녹산의 죽음 ==== 안녹산의 공세가 한참 진행되던 중 안녹산이 거병 이후 앓던 안질이 악화되어 맹인 수준까지 떨어졌고, 또한 등창을 앓으면서 주변 사람에게 포악하게 행하기 시작하면서 안사의 난은 전환점을 밟게 된다. 특히 [[안녹산]]의 폐첩인 단씨가 안경은이라는 아들을 낳자 기존의 후계자였던 2남 [[안경서]]를 대신해 안경은을 세우려는 의도를 보였고, 이에 안경서가 반발하면서 757년 1월, 안녹산은 안경서에 의해 피살당한다. 이는 당의 반격의 실마리가 된다. 안녹산의 군재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에게는 장기간에 걸친 지휘경험, 그리고 반란 이전 3개 절도사직을 역임하면서 그 수하들에게 가진 유무형의 권위 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안경서에게는 안녹산이 가진 경험과 권위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기에 그저 수하 제장들에게 후하게 베푸는 것만으로 어떻게든 통제하려 시도할 수밖엔 없었다. 이에 안녹산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여러 장수들은 슬슬 안경서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특히 안녹산의 본래 근거지인 범양 일대를 사실상 총괄하던 사사명은 후에는 안경서보다도 세력이 더 커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